풀 가장자리에 쪼그리고 앉은 소녀가 물속에서 숨을 헐떡이는 소년에게 물었다.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올린 소녀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 보고 있다. 눈이 부시다. 소년은 문득 생각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다른 동작은 이만큼 아름답지 않은 걸요.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하는 거겠지."
"으윽."
아픈 곳을 지적하는 고우의 말에 레이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가르쳐 줄까?"
"네?"
"다른 사람들 연습하는 데 방해될까봐 다시 가르쳐 달라고 못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내가 알려준다고."
"어, 하지만..."
레이는 망설이며 말했다.
"고우씨는 수영 잘 하십니까?"
"응, 적어도 레이군보다는."
"크윽."
연달아 타격을 입은 레이는 한참이 지나도록 회생하지 못했다.
"기왕 이렇게 아름다운 날씬데 하늘을 보면서 수영하고 싶지 않아?"
레이는 고우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흰 구름이 떠다니는 푸른 여름 하늘. 확실히 수영장 바닥만 쳐다보기에는 아까운 날씨였다.
"부탁드립니다."
"응!"
자신만만하게 웃는 소녀의 모습에 소년은 작은 기대를 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그 기대가 무너졌다.
"이게 뭡니까?"
"풀부이. 처음 봐?"
땅콩 모양의 스트리폼을 보고 레이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걸 가지고 어떻게 하라고? 평범한 원피스 수영복을 입었음에도 그 미모가 빛을 잃지 않은 소녀가 수경을 쓰고는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다리 사이에 끼우고."
허벅지 사이에 풀부이 중앙에 좁아지는 부분을 끼운 고우가 뒤로 몸을 젖혔다. 다리를 딱 붙여서 움직이지 않은 채, 팔동작 만으로 슥슥 물을 헤치고 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레이는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알겠지? 이렇게 해서 왕복 50번."
"50번이요?!"
자기 할일은 다했다는 듯, 풀 밖으로 나가버리는 고우의 뒷모습을 보며 레이는 입을 벌렸다.
"하지만 수영을 가르쳐주는 게..."
"레이군의 문제는 수영하는 법을 모르는게 아니라, 팔이랑 다리 동작이 서로 맞지 않아서 그래. 그러니까 하나하나가 완전히 몸에 익어서 신경 안 써도 될까지 연습하는 수밖에 없댔어."
똑부러지게 고우의 말은 레이가 듣기에도 신빙성 있어보였다. 레이는 까마득한 풀 반대편을 보았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고우는 레이가 지쳐나가 떨어질 때까지 스파르타 훈련을 계속했다. 그는 더이상 밝은 하늘을 보는게 기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슬슬 제대로 된 동작을 해도 되지 않을까요?"
"응?"
고우와의 훈련을 시작한지 겨우 이틀째지만, 레이는 지쳐있었다. 워낙 몸이 잘 다져져서 체력은 쉽사리 바닥나지 않았지만, 한 동작만 하게 되면 속도도 잘 나지 않고 무엇보다 보조 기구에 의지해야만 하는 게 그의 미의식에 반했다.
"우움, 일주일은 해야한다고 했는데..."
고우는 망설이면서도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그에 자신감을 얻어 물을 박차고 나간 레이는 전보다 더 멀리 나가는가 싶더니- 다시 천천히 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고우는 불쌍하다는 듯 기침하며 물을 토하는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이번에는 내가 잡아줄게."
평영 자세를 취한 레이의 손을 고우가 잡았다. 여자와 단둘이서 수영하는 이 상황에 두근거릴 법도 하건만, 레이의 눈은 수영을 배운다는 기쁨에 더 젖어있는 듯 했다.
"그래도 레이군 자세 많이 좋아진 것 같아. 전보다 훨씬 더 많이 나갔고."
"저한테 걸리면 이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짜? 그럼 손 놔도 돼?"
"죄송합니다!"
금새 꼬리를 마는 레이의 모습에 고우는 작게 키득거렸다. 부드러운 웃음소리에 레이는 그제야 상대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맞닿은 손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레이는 연습이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연습을 계속한지 일주일. 레이는 당당하게 다이빙대에 섰다. 온 수영부 멤버가 손을 쥐고 그의 모습을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풍덩!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물에 들어간 그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시 수면 위로 나왔다. 빠질듯 말듯, 위태위태하게 올라왔다 내려오기를 반복하던 그가 점점 안정적으로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부원들은 서로를 얼싸안으며 환호했다. 이윽고 반대편 벽을 치고 배영으로 자세를 바꾼 그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느리게 구름이 흘러가는 게 보였다. 가슴벅찬 광경이라고 그는 낮간지럽게 생각했다.
이윽고 레인의 끝을 알리는 깃발대가 보이자 레이는 속도를 줄이고 뒤로 손을 뻗었다. 벽에 손이 닿아 그는 수경을 벗고 자신에게 달려온 사람들을 보았다. 흐린 시야 사이로 유독 밝게 웃고 있는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진심을 담아 마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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